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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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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vs 펠라기우스

실제 역사적 논쟁로마제국 후기410~430년북아프리카·팔레스타인13나무

이 대결의 성격 · 실제 역사적 논쟁교회 전체가 지켜본 공개 논쟁이었고 여러 차례 회의가 열렸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토론한 기록은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도 카르타고에서 그를 한두 번 보았을 뿐 대화하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게다가 펠라기우스의 글은 대부분 반대자의 인용으로만 전해집니다.

1막 · 역사적 배경1 / 13

1막 ·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3북아프리카·팔레스타인 외 2

해안선 자료: Natural Earth (퍼블릭 도메인) · 시대별 국경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한자리에 겹친 곳은 숫자가 붙은 점입니다. 눌러서 펴 보세요.

  • 1410년 로마가 약탈당하고 피난민이 북아프리카로 밀려들었다
  • 2기독교가 제국의 공인 종교가 된 뒤 신자 수가 크게 늘고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 3'노력하면 된다'는 권면과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고백이 교회 안에서 부딪쳤다

로마 약탈

410년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가 로마 시를 사흘간 약탈했다. 800년 만에 성벽이 뚫렸다.

영원할 줄 알았던 도시가 무너졌다. 기독교를 받아들여서 이렇게 되었다는 비난이 돌았다.

펠라기우스 논쟁과 카르타고 회의

418년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가를 두고 오래 다투다가, 카르타고 회의가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정죄했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과,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이 교회 안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역사적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