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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vs 법가
동시대 사상 경쟁전국시대~진기원전 4~3세기중국 여러 나라12분나무
이 대결의 성격 · 동시대 사상 경쟁 — 같은 시대에 군주의 선택을 놓고 실제로 경쟁한 두 흐름입니다. 한비자는 저작에서 유가를 '나라를 좀먹는 다섯 부류'의 하나로 지목해 비판했습니다.
1막 · 역사적 배경1 / 13
1막 ·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해안선 자료: Natural Earth (퍼블릭 도메인) · 시대별 국경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한자리에 겹친 곳은 숫자가 붙은 점입니다. 눌러서 펴 보세요.
- 1전국시대 말, 나라의 존망이 눈앞에서 갈렸다
- 2군주들은 부국강병의 즉효약을 찾았다
- 3진이 법가의 방식으로 통일했으나 15년 만에 무너졌다
중국 전국시대와 직하학궁
기원전 475년일곱 나라가 250년을 싸웠다. 제나라는 도읍 임치의 직하(稷下)에 학자들을 불러 모아 논쟁하게 했다.
나라가 언제 사라질지 몰랐다. 군주는 살아남을 방법을, 백성은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진의 통일과 법가의 실험
기원전 221년진이 여섯 나라를 병합하고 법·도량형·문자를 하나로 묶었다. 그러나 제국은 15년 만에 무너졌다.
엄한 법이 정말 나라를 오래가게 하는지, 사람들은 제국의 붕괴를 눈으로 보며 물었다.
한 무제, 유가를 나라의 학문으로 삼다
기원전 136년오경박사를 두어 유가 경전을 관학으로 삼았다. 실제 통치에는 법가의 방식도 함께 쓰였다.
무엇을 공부해야 벼슬을 하는지가 정해졌다. 학문과 출세가 한 줄로 이어졌다.
역사적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