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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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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vs 흄

심화 · 학부 수업

인식론 개론의 뼈대. 다만 '합리론 대 경험론'이라는 교과서 도식 자체가 18세기 말 이후의 구성물(특히 칸트와 그 계승자들의 정리)이라는 점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 좋다. 두 사람을 그 상자에 넣기 전에, 각자가 실제로 어떤 문제를 풀려 했는지를 본다. 데카르트의 관심은 회의가 아니라 학문의 정초였고, 흄의 관심은 파괴가 아니라 '인간학'의 건설이었다.

논증 재구성

전제에 번호를 붙여 세우고, 실제로 공격받는 전제를 지목합니다. 수업에서 물고 늘어질 지점입니다.

데카르트

코기토

  1. P1.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감각·수학·외부 세계).
  2. P2. 전능한 기만자가 나를 속인다고 해도, 속으려면 내가 있어야 한다.
  3. P3. 따라서 '나는 있다'는 내가 그것을 생각하거나 말할 때마다 참이다.
  4. C.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는 필연적으로 참이다.
공격받는 전제

P3은 무엇을 확보하는가. '생각이 일어난다'까지인가, '생각하는 지속적 실체가 있다'까지인가. 리히텐베르크의 유명한 지적('생각된다고 말해야 한다')과 흄의 자아 비판이 정확히 이 간극을 친다.

성찰에서는 삼단논법이 아니라 수행(performance)으로 제시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있다'라는 추론 형태는 방법서설·철학의 원리 쪽이다.

데카르트, 성찰 · 제2성찰

흄

데카르트의 순환 문제

  1. P1. 데카르트는 명석판명한 관념이 참임을 신의 성실성으로 보증한다.
  2. P2. 그런데 신의 존재 증명 자체가 명석판명한 관념에 의존한다.
  3. C. 보증이 순환한다.
공격받는 전제

데카르트 자신이 제2반박에 답하면서 '현재 명석하게 지각하는 것'과 '기억된 결론'을 구분한다. 이 구분이 순환을 끊는지가 400년째 쟁점이다(Frankfurt, Kenny의 논의).

아르노, 제4반박 / 데카르트의 답변

흄

귀납의 문제

  1. P1. 관찰되지 않은 사례에 대한 추론은 '자연은 한결같다'는 원리를 전제한다.
  2. P2. 그 원리는 논증적으로(관념의 관계로) 증명되지 않는다 — 부정해도 모순이 아니다.
  3. P3. 경험으로 증명하려면 다시 그 원리를 전제해야 한다(순환).
  4. C. 귀납 추론은 이성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습관이다.
공격받는 전제

결론이 회의주의인가 자연주의인가. 흄은 추론을 그만두라 하지 않는다. 그는 정당화의 부재를 밝히고 그 자리를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이 차이를 놓치면 흄을 파괴자로만 읽게 된다.

흄,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 · 4절

흄

다발 이론

  1. P1. 어떤 관념이 정당하려면 그것이 유래한 인상이 있어야 한다.
  2. P2. 내성할 때 나는 언제나 어떤 지각(더움·추움·사랑·미움)과 마주친다.
  3. P3. 지각들을 빼고 남는 '나'와는 결코 마주치지 못한다.
  4. C. 자아는 지각들의 다발이며, 단순하고 지속하는 실체가 아니다.
공격받는 전제

흄 자신이 『논고』 부록에서 이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 지각들을 하나로 묶는 원리를 대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 이론의 실패를 저자가 기록한 드문 사례.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 1권 4부 6절 및 부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