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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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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vs 펠라기우스

심화 · 학부 수업

서방 신학의 방향을 정한 논쟁이자, '사료가 한쪽에만 남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의 교과서적 사례. 펠라기우스의 저작 대부분은 반대자의 인용으로 전한다. 게다가 최근 연구(Ali Bonner, 2018)는 '펠라기우스주의'라는 단일한 이단 체계 자체가 논쟁 과정에서 구성된 것일 수 있다고 본다. 이 차시는 은총론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이단 규정의 역사적 생산 과정을 가르친다.

논증 재구성

전제에 번호를 붙여 세우고, 실제로 공격받는 전제를 지목합니다. 수업에서 물고 늘어질 지점입니다.

펠라기우스

명령은 능력을 전제한다

  1. P1. 하나님은 인간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2. P2.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므로 할 수 없는 것을 명령하고 그 불이행을 벌하지 않으신다.
  3. P3. 명령이 정당하려면 명령받은 자에게 그것을 이행할 능력(posse)이 있어야 한다.
  4. C. 인간에게는 죄를 짓지 않을 능력이 본성상 주어져 있다.
공격받는 전제

P3은 칸트의 '해야 한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와 같은 형식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원리를 부정하지 않는 대신, 명령의 기능을 바꾼다 — 명령은 능력을 확인해 주는 것이 아니라 무능을 드러내어 은총을 구하게 만든다(『영과 문자』 취지).

펠라기우스 자신의 저작에서 이 형식으로 정식화된 문장은 확인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용과 『데메트리아스에게 보낸 편지』의 논조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펠라기우스, 데메트리아스에게 보낸 편지 · 2–3장

아우구스티누스

분열된 의지 논변

  1. P1.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실제로 겪는다.
  2. P2. 몸에 명령하면 몸은 곧바로 따르는데, 마음이 마음에게 명령하면 따르지 않는다.
  3. P3. 명령하는 자와 명령받는 자가 같은 나라면, 그 불이행은 외부의 방해가 아니라 의지 자체의 분열이다.
  4. C. 의지는 병들어 있으며, 그 치유는 의지 바깥에서 와야 한다.
공격받는 전제

P1에서 '겪는다'는 1인칭 보고다. 이것이 인류 전체의 조건으로 일반화되는 단계가 논증의 약한 고리다. 또 P3의 '분열'에서 곧바로 '외부 치유의 필요'가 따라 나오는지도 따져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 8.8.20–8.9.21

아우구스티누스

네 상태 도식

  1. P1. 창조된 상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음(posse non peccare).
  2. P2. 타락 이후: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음(non posse non peccare).
  3. P3. 은총 아래: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음이 회복됨.
  4. P4. 영광 중에: 죄를 지을 수 없음(non posse peccare).
  5. C. 자유의지는 부정되지 않는다. 다만 상태마다 그 범위가 다르다.
공격받는 전제

P2가 핵심이다. '할 수 없음'이 형이상학적 불가능인가, 아니면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도덕적 확실성인가. 후자로 읽으면 책임 문제가 완화되지만 논증의 힘도 약해진다.

이 도식 덕분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의지 부정론자'가 아니다. 학부 답안에서 가장 자주 틀리는 지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책망과 은총 · 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