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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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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잘리 vs 이븐 루시드

심화 · 학부 수업

비서구 철학을 '사상 소개'가 아니라 '논증 분석'으로 가르칠 수 있는 최적의 차시. 두 텍스트가 한 문단씩 맞물려 있어 논쟁의 형식 자체를 보여 준다. 덤으로 두 가지를 함께 가르칠 수 있다 — 인과 필연성 비판(흄보다 700년 앞선 구조)과, '가잘리가 이슬람 과학을 죽였다'는 통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논증 재구성

전제에 번호를 붙여 세우고, 실제로 공격받는 전제를 지목합니다. 수업에서 물고 늘어질 지점입니다.

가잘리

인과 필연성 비판

  1. P1.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A(불의 접촉)에 이어 B(솜의 탐)가 일어난다는 사실뿐이다.
  2. P2. 잇달아 일어남은 필연적 연결과 논리적으로 구별된다. A가 있고 B가 없는 것을 생각해도 모순이 아니다.
  3. P3. 관찰은 P2의 간극을 메워 주지 못한다.
  4. C. 'A가 B의 필연적 원인이다'는 증명되지 않았다.
공격받는 전제

P2는 '생각 가능성'에서 '가능성'으로 넘어간다. 이 이행이 정당한가는 근대 이후 양상 인식론의 핵심 논쟁이다. 또한 결론은 회의적 결론일 뿐, '신이 직접 태운다'는 적극적 주장을 곧바로 주지 않는다.

흄의 논증과 구조가 거의 같다. 직접 영향 관계는 확인되지 않으며, 수업에서 이 점을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가잘리, 철학자들의 모순 · 17번째 논의

이븐 루시드

본성 없이는 학문도 없다

  1. P1. 사물에 고유한 본성(ṭabīʿa)이 없다면, 어떤 것에 대해 정의도 분류도 할 수 없다.
  2. P2. 정의와 분류가 없으면 학문적 진술이 불가능하다.
  3. P3.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학문을 하고 있으며 그 성과가 있다.
  4. C. 사물에는 고유한 본성이 있고, 따라서 실재하는 인과가 있다.
공격받는 전제

P3은 초월론적 형식의 논증이다(학문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참이어야 하는가). 가잘리 쪽은 규칙적 습관(ʿāda)만으로도 학문의 실천이 설명된다고 답할 수 있다 — 현대의 규칙성 이론과 같은 자리다.

이븐 루시드, 모순의 모순 · 17번째 논의에 대한 반박

이븐 루시드

해석 규칙(타윌) 논변

  1. P1. 계시와 논증적 진리는 모두 참이며, 참은 참과 어긋나지 않는다.
  2. P2. 논증이 확실한 결론 p에 이르렀는데 계시의 겉뜻이 ~p로 보인다면, 어느 한쪽을 재해석해야 한다.
  3. P3. 논증의 확실성은 그 자체로 검사 가능하지만, 겉뜻은 비유일 수 있다.
  4. C. 그런 경우 계시를 비유로 읽어야 한다(타윌).
공격받는 전제

P3이 특권을 한쪽에 준다. 누가 '논증이 확실하다'고 판정하는가. 이븐 루시드는 그 권한을 논증 능력자에게 한정하는데, 이는 인식적 위계를 낳는다.

이븐 루시드, 결정적 논고